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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이모저모

석유화학산업은 포기할 수 없다

작성자  조회수1,832 등록일2025-06-05
케미탐험대.jpg [11,411 KB]

KRICT 케미탐험대 <화학칼럼>

 

석유화학산업은

포기할 수 없다

 

정부가 전남 여수시를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했다. 1967년부터 국가 산업발전과 지역 경제를 이끌어왔던 여수국가산업단지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때문이다. 여수의 쇠퇴는 우리 경제를 지탱해 주는 핵심 기간 산업인 석유화학 산업이 깊은 불황의 늪에 빠져들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세계 5위의 원유 정제 능력과 세계 4위의 에틸렌 생산 능력을 갖춘 ‘화학 강국’의 위상이 심각하게 흔들릴 수도 있다는 뜻이다.


Chapter 01

경기 침체와 중국발 공급 과잉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는 복합적이고 구조적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그리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로 글로벌 경기가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엎친 데 덮친다고 극단적인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차별적인 폭정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자칫하면 전 세계가 깊은 디프레션의 늪으로 빠져들 수 있다는 위기감이 빠르게 퍼지고 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석유화학 제품의 공급 과잉이 시작이었다. 석유화학 산업에 대한 중국의 공격적인 시설 투자는 상상을 넘어선 것이었다. 특히 나프타·에틸렌·프로필렌 등의 범용 소재를 무분별하게 생산하기 시작했다. 우리 석유화학 산업계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악재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거대한 중국 시장이 사라져 버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국제 시장에서 중국산 범용 소재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다.

 

자료 = 한국석유화학협회

 

 

실제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공급 과잉은 우리 석유화학 산업계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고 있다. 석유화학 산업의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의 국제 시세가 2022년 이후부터 손익분기점인 톤당 300달러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에틸렌을 생산할수록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이다. 특히 중국산 에틸렌은 국산보다 30% 이상 낮은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다.

 

중국산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쏟아져 나올 중동산 범용 소재도 문제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는 사우디아라비아·중국·한국에 건설 중인 7개의 정유·석유화학 일관 공장에서 연 1150만톤의 에틸렌을 생산할 예정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양의 에틸렌을 생산하는 LG화학의 생산 능력 330만톤의 3.5배에 달하는 엄청난 물량이다.

 

국제 사회에서 석유화학 산업의 불황은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길은 하나뿐이다. 부가가치가 낮은 범용 소재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부가가치가 높은 스페셜티 제품으로 방향을 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좌고우면(左顧右眄)할 여유가 없다.


Chapter 02

사회적 거부감도 극복해야

 

충주비료 공장 전경 (출처 = e영상역사관)

 

우리의 화학산업은 1961년 충주비료에서 시작되었다. 호남비료?영남화학?한국비료 등에서 비료용 요소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1973년의 ‘중화학공업육성정책’으로 본격적인 석유화학 산업이 출발했다. 석유화학·철강·비철금속 등의 소재산업이 중화학공업육성 정책의 핵심이었다.

천연자원도 없고, 기술력과 자본도 없었던 우리에게는 무모하고 비현실적인 시도였지만 우리는 과감하게 도전했고, 크게 성공했다. 세계 수준의 품질·규모를 자랑하는 정유·화학산업·제철이 그 결과였다.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한강의 기적’은 석유화학 산업에서 시작한 놀라운 성과였다.

 

그런 석유화학 산업이 토사구팽(?死狗烹)의 신세로 전락하고 있다. 2011년 이명박 대통령의 ‘기름값이 묘하다’는 발언이 그 시작이었다. 정유사의 담합이나 폭리의 근거를 분명하게 밝혀내지도 못했으면서도 국제 원유·석유제품 시장에서 시작된 급격한 가격 상승의 책임을 정유사에게 떠넘겨버렸다. 회계사 출신이라는 산업부 장관이 ‘휘발유의 원가를 밝혀내겠다’는 오기로 정유산업을 압박했다. 심지어 정부가 직접 일본 정유사의 경유를 수입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결과는 참담했다. 국가 경제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정유사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완전히 깨져버렸다.

 

2011년의 ‘가습기 살균제 참사’도 악재였다. 석유화학산업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이 들불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2013년에 제정된 ‘화평법’과 ‘화관법’을 통해서 석유화학 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제도화되었다. ‘국민 건강’과 ‘환경 보호’는 핑계였고, 사실상 화학물질의 유해성·위해성을 앞세운 ‘화학산업 퇴출법’이었다. 유럽연합(EU)의 REACH가 강조하는 ‘화학산업의 경쟁력 강화’에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기술의 가치를 무시한 맹목적인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도 석유화학산업에게는 악재였다. 우리나라 화학산업의 출발을 가능하게 해주었던 ‘요소’의 생산을 2012년부터 전면 중단해 버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값싼 중국산 요소에 넋을 잃어버린 것이다. 많은 양의 에너지를 소비하고, 환경을 오염시키는 요소 생산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2021년의 요소수 대란은 자유시장에만 집착하는 선무당 수준의 경제 논리가 만들어낸 혼란이었다.


Chapter 03

정부의 노력은 국민의 당위적 요구

정부가 핵심 기간 산업인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를 먼 산 보듯 해서는 절대 안 된다.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고 있는 석유화학 기업이 ‘자율적’으로 만족스러운 자구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지나치게 순진한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도 자국의 핵심 산업을 지키고, 첨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도 사실은 미국의 제조업을 살려내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고부가가치의 스페셜티 제품의 중요성이 처음 제기된 것도 아니다. 1980년대부터 시작했던 정밀화학산업이 바로 그런 고급화·첨단화 시도였다. 정부도 상당한 투자를 했고, 대기업도 협력했고, 중소기업도 노력했다. 상당한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정밀화학 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기업의 노력이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특히 2019년 일본의 아베 행정부가 촉발했던 반도체 소재 대란 이후에 허겁지겁 밀어붙였던 ‘소부장 육성 사업’의 부작용이 심각했다. 과학계 전체가 ‘약탈적 카르텔(떼도둑)’로 내몰려 버렸다. 정밀화학산업 육성에 대한 산업부의 전문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환경부의 도를 넘는 환경 규제도 합리적 수준으로 정비해야 한다. 물론 산업현장에 대한 정부의 합리적인 안전 규제는 반드시 필요하다.

석유화학 산업이 국민 안전이나 환경 보호에 부담이 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위험하고 더럽다는 이유만으로 기술을 거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동차도 위험하고, 비행기는 훨씬 더 위험하다. 그렇다고 자동차와 비행기를 반드시 퇴출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안전과 환경을 지키기 위한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제도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반복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석유화학 산업의 지속적인 체질 개선도 중요하다. 화학산업의 요람이었던 유럽과 미국은 오래전에 정밀화학 산업으로 체질을 개선했다. 우리가 석유화학 산업으로 경제 성장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틈새시장을 놓치지 않았던 결과였다. 일본도 1990년대부터 정밀화학 산업으로의 도약에 성공했다. 요소의 생산을 완전히 포기해 버렸던 우리와 달리 미국과 일본은 여전히 고품질의 요소를 생산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석유화학 산업은 우리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기간 산업이다. 기업의 역할이 중요하다. 어떤 정밀화학 제품을 개발할 것인지의 선택은 온전하게 기업의 몫이다. 정부의 획일적인 기획은 범용 소재에서나 의미가 있는 것이다. 획기적인 구조조정과 연구개발을 통해 석유화학 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은 온전하게 기업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화학연구원도 정밀화학 산업에 필요한 기술의 고도화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