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 정착하던 시기에 아내가 취미로 도예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당시 청년작가들이 경험법칙으로 도자기를 구울 뿐, 소성이나 유약 같은 주요 재료의 성질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요즘 말로 ‘재능기부’ 차원에서 1987년부터 ‘도연회’라는 이름의 도예재료연구회를 조직해 젊은 작가들에게 제 지식을 나누기 시작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전국 각지에서 마흔 명 넘게 청년작가들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강의록을 만들게 되었고 함께 실험한 데이터를 모아 소논문집도 2권을 만들면서, 나중에는 도예촌을 만들어보자는 발상에 이르게 됐습니다.”
혼자 어렵게 공방을 꾸려가고 있는 도예가들이 한 곳에 마을을 이뤄 정진한다면 작품 활동과 경제적 여건 모두 더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유 박사의 아이디어에 함께하던 10명의 청년작가들이 뜻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1990년 싹을 틔운 계룡산도예촌의 꿈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실로 많은 난관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철화분청사기의 맥을 잇는 도예촌 조성을 지자체에 제안하고, 적합한 후보지를 찾아 길도 없는 산골을 헤매던 노력의 선두에는 늘 유 박사가 있었습니다.
“원래는 지자체가 보유한 국유지에 도예촌을 만들자는 계획이었는데 진행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저희가 원했던 것은 멀리는 고려 시대부터 도자기를 구워온 흔적들이 있는 곳에서 유구한 역사의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것이었는데, 지자체가 보유한 국유지는 깊은 산중일지라도 마땅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당초 계획과 달리 직접 부지를 찾아나서야 했고, 부지도 선구매해야 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제가 자금을 구하여 선구매를 하고, 1992년 지자체의 허가를 받은 다음에, 청년작가들이 신청한 대로 부지를 나누고, 토목공사를 한 끝에 1993년 도예촌의 문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