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

KRICT 이모저모

어설프게 만든 ‘수제품’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경계해야

작성자  조회수2,059 등록일2025-03-21
스토리.jpg [11,387.4 KB]

KRICT 스토리

어설프게 만든 ‘수제품’에 대한

지나친 관심을 경계해야

 

 

 

 

 

 

비누·세제·향초·소독제와 같은 ‘생활화학용품’이나 향수·로션과 같은 ‘화장품’을 소비자가 직접 만들어서 쓰고 싶어 하는 소비자가 적지 않다. 소비자가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든다는 뜻에서 ‘수제품’(手製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인의 은밀한 비법(秘法)으로 정성껏 만든다는 ‘명품’(名品)도 있다. 제조 방법을 친절하게 소개해 주는 인터넷 사이트도 많고, 동호인들이 함께 모여서 공동으로 ‘작품’을 만드는 ‘공방’도 있다. 심지어 수제품을 만들어서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Chapter 01

도무지 반갑지 않은 수제품

 

화학자의 입장에서 소비자가 직접 만든 ‘수제품’이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장인이 만들었다는 ‘명품’은 썩 반갑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소비자가 수제품을 만들어서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편익을 찾아보기 어렵다. 수제품을 만드는 일이 소비자가 만족감을 느낄 정도로 도전적인 것도 아니다. 일상생활에 유용한 생활화학용품이나 화장품의 제조는 기술력을 갖추고, 진심으로 소비자를 생각하는 제조사에 맡겨두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일이다.

 

실제로 생활화학용품이나 화장품을 만드는 일은 생각처럼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가정에서 요리를 하거나 목재 가구를 만드는 일이 오히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렵다. 필요한 화학 재료를 순서에 따라 섞어서 저어주는 정도가 고작이다. 약한 불로 가열하는 공정이 포함되는 정도가 고작이다. 대단한 손재주가 필요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가장 대표적인 수제품이라고 할 수 있는 비누를 만드는 일이 그렇다. 식용유와 같은 지방산(fatty acid)에 수산화소듐(NaOH)과 같은 강한 염기(base)를 섞어서 충분히 저어주면 된다. 비누가 만들어지는 비누화 반응은 대략 30분 정도면 끝난다. 비누화 반응이 끝나면 원하는 용기에 넣어서 굳힌다. 향료나 색소를 넣어 주면 독특한 수제 비누가 만들어진다. 몇 번 반복해 보면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간단치 않은 문제가 있다. 우선 수제품 제조에 사용하는 화학 원료가 일상생활에서는 사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애써 화공약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전문상점을 찾아가야만 구할 수 있다. 소비자가 원하는 정도로 적은 양을 구하는 일도 생각처럼 쉽지 않을 수 있다.

 

 

어렵사리 구한 화학 원료의 보관이나 관리가 쉽지 않은 것도 문제다. 화학 원료가 인체나 환경에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비누 제조에 사용되는 수산화소듐이 그렇다. ‘양잿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치명적인 독극물이다. 자칫 적은 양이라도 섭취하거나 피부에 닿으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독성이 강한 위험 물질을 취급·보관하는 별도의 공간을 마련하기 어려운 가정에서 그런 독극물을 사용하고, 보관하는 일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호기심이 강하고, 통제가 어려운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에서는 더욱 그렇다.

 

 

제조 과정에서 독성이 강한 ‘증기’(fume)가 발생하기도 한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재료를 조리하는 경우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 충분한 환기와 안전시설을 갖추지 않은 가정이나 공방에서 수제품을 제조하는 일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다.

 

 


Chapter 02

불확실한 ‘품질’과 걱정스러운 ‘변질’

 

 

애써 만든 수제품의 ‘품질’도 확실하지 않다. 소비자가 어설프게 만든 수제 비누에는 원료로 사용한 지방산이나 수산화소듐이 잔류할 수도 있고, 원하지 않는 ‘불순물’이 포함될 수도 있다. 모두 비누의 품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수제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확인하는 일은 상당한 수준의 기술과 장비가 필요하다. 소비자가 품질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일이 생각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뜻이다.

 

 

품질을 확인하지 않은 수제품을 불특정 다수의 다른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법으로 엄격하게 정해놓은 기술·시설을 갖추어야만 화장품·의약외품·생활용품을 생산해서 유통망을 통해서 판매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자칫하면 ‘약사법’, ‘화장품법’, 또는 ’전기생활용품안전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행정적·사법적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정체불명의 장인이 만들었다는 명품도 마찬가지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수제품의 ‘부패’(腐敗) 또는 ‘변질’(變質)이다. 거의 모든 수제품은 시간이 지나면 유기물이 분해되거나 곰팡이나 박테리아(세균)의 증식에 의한 ‘변질’이 진행된다. 조리한 음식과 달리 화장품이나 생활용품은 한꺼번에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절대 외면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다. 수제 화장품을 반드시 냉장 보관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수제 화장품이나 비누를 냉장고에 넣어둔다고 변질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자칫하면 세균 범벅으로 변질된 수제품 때문에 심각한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시중에 유통 중인 화장품이나 생활화학용품에는 가공식품과 마찬가지로 부패와 변질을 방지하기 위한 ‘보존제’를 반드시 사용한다. 비누와 치약도 예외가 아니다. 살생력이 충분히 약해서 제품의 부패나 변질을 막아주면서도 인체나 환경에는 부작용이 없는 ‘살생물질’(biocide)을 보존제로 사용한다. 보존제를 ‘방부제’라고 오해해서 거부할 이유가 없다. 방부제는 인체에 치명적인 독성을 나타내는 포르말린과 같은 맹독성 살생물질이다.

 

 

보존제에 대한 지나친 거부감은 경계해야 한다. 전 세계적으로 안전하게 사용하고 있는 일부 보존제를 ‘가습기 살균제’라는 이유로 사용을 전면 금지시킨 조치는 합리적이라고 하기 어렵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보존제 성분을 밀폐된 실내에 지속적·반복적으로 분무(噴霧)하도록 요구한 제조사의 ‘살인적 사용법’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제조사의 잘못을 보존제에 떠넘겨서는 안 된다.

 

 


Chapter 03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찾아야

 

 

수제품에 대한 관심은 사실 기업이 대량으로 생산해서 값싸게 공급하는 ‘공산품’에 대한 소비자의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품질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법으로 금지된 유해물질이 들어있거나, 부패·변질된 공산품 때문에 심각한 사회적 논란이 벌어지기도 하는 것은 사실이다. 기술력이 떨어지거나 비윤리적인 기업의 요란한 ‘노이즈 마케팅’이 소비자를 불안하게 만들기도 한다. 실제로 화장품이나 생활화학용품의 요란한 광고는 신뢰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엉터리 자료가 넘쳐나는 ‘인터넷’과 사회적 책무성을 망각한 ‘황색 언론’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다고 무작정 공산품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공산품의 ‘품질’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마련해 놓은 약사법·화장품법·전기화학용품안전법·표시광고법 등의 제도적 장치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공산품의 생산·유통 과정에서 불량품이나 부패·변질 사례가 발견되면 정부가 반드시 기업에게 무거운 책임을 묻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2018년부터는 공산품 때문에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 제조사에게 무거운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제조물책임법’도 시행되고 있다. 정부가 공산품의 품질·안전 관리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감시하는 소비자 단체의 노력도 중요하다.

 

 

수제품이 친환경적인 ‘천연’ 원료만 사용한다는 주장도 경계해야 한다. 천연 재료에 대한 우리의 집착은 도를 넘어사고 있다. 심지어 쌀뜨물로 만든 세제를 ‘친환경 미생물’이라는 뜻으로 ‘EM’(Effective Micro-organism)으로 소개하기도 하는 형편이다. EM이 구체적으로 어떤 미생물인지에 대한 정확한 정보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천연’은 좋은 것이고, ‘합성’은 절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분법적 인식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화학 전문가가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에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 물론 소비자가 이성적인 소비활동을 강화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소비자가 개인적으로 믿을 수 있는 기업의 브랜드를 찾아내는 노력이 훨씬 더 현실적이다. 품질관리가 불가능한 엉터리 ‘수제품’이나 ‘명품’은 대안이 되기 어렵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