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인형의 화학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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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문화재 연구소에 가면 바다에서 발굴한 신안선에서 나온 각종 유물을 만날 수 있다. 신안선은 1323년 중국에서 일본을 가다가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했다고 한다. 그 배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침몰한 연도를 알아 내는 일은 문제될 수가 없다. 침몰하면서 갯벌에 파 묻혀 공기와 접촉이 차단된 목선은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나도 거의 원형을 유지한 상태로 발견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기록이 남아 있지 않으면 목선의 건조 연대를 추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수만 년의 세월이 흐른 목재 유물을 비롯한 동물의 뼈 등의 과거를 추정하는 방법으로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법이 있다. 리비(Willard F. Libby)는 방사성 연대 측정법을 발명한 공로로 1960년 노벨화학상을 받았다. 그의 측정방법은 고고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에 기여하였다.
방사성 탄소의 생성과 순환
탄소는 여러 개의 동위원소가 있다. 탄소의 원자번호는 6이므로 탄소의 핵에 있는 양성자는 모두 6개이다. 그런데 탄소는 양성자의 수는 같고 중성자의 수가 다른 동위원소가 약 15종정도 된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탄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탄소의 동위원소는 12C(양성자 6개, 중성자 6개)와 13C(양성자 6개, 중성자 7개)이다. 이 탄소들은 매우 안정하여 방사성 붕괴가 진행되지 않는다. 탄소의 원자량이 12.01인 것도 탄소의 동위원소 비율을 감안해서 원자량을 계산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불안정한 방사성 동위원소들은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을 방출하면서 다른 원소로 변한다. 알파선은 헬륨의 핵으로 +극성을 띠며, 베타선은 전자로 -극성이다. 감마선은 극성이 없고, 방사선 중에서 에너지가 제일 크다는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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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한 12C와 13C와는 달리 14C(양성자 6개, 중성자 8개)는 베타선을 방출하며 붕괴되는 탄소의 방사성 동위원소이다. 그것은 현재에도 지구 상층부에서 질소가 우주선과 충돌하면서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1년 동안 지구 전체에서 만들어지는 14C의 양은 약 7kg 정도로 짐작하고 있다. 그것을 농도로 따져보면 약 1ppt(1/1012)로 엄청나게 낮은 농도이지만, 탄소 원자의 개수(약 3.5 x 1026)로는 헤아릴 수도 없이 엄청나게 많은 것이다. 계산은 불가능하겠지만, 그 정도의 탄소의 개수라면 거의 모든 생물들과 14C 교환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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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 탄소가 산소와 반응을 하면 방사성 이산화탄소, 14CO2가 만들어진다. 식물의 동화작용에 참여하는 이산화탄소는 대부분 12CO2 이겠지만, 14CO2 역시 같은 경로를 거친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식물에 있는 탄소의 동위원소 비율(12C와 14C의 비율)은 공기에 있는 12C와 14C의 비율과 거의 일정한 값으로 유지된다. 그런데 식물이 죽고 나면 더 이상 동화작용을 할 수 없으므로 탄소의 순환이 멈춘다. 그것은 12C와 14C의 비율이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난다. 죽은 식물에 있는 12C는 안정하므로 그 양을 유지하겠지만 14C는 방사성 붕괴가 진행되어 그 양이 줄어든다. 왜냐하면 식물이 흡수했던 14C는 베타선을 방출하는 방사성 붕괴를 겪고나서 안정한 질소 14N(양성자 7개, 중성자 7개)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은 식물에 남아있는 14C의 양(비율)을 측정하면 식물이 죽은 지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있다. 죽은 후 몇 년이 지났는 지를 계산할 때 14C의 양과 그것의 반감기를 이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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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감기와 연대측정
방사성 동위원소 14C는 반감기가 약 5730년이다. 반감기는 처음에 있던 원소의 양이 1/2로 줄어드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예를 들어 14C의 경우에 1g이 0.5g으로 되는데 5730년이 걸리고, 다시 5730년이 흐르면 0.5g이 0.25g으로 줄어든다. 그러므로 n번의 반감기를 지났을 때 탄소 14C의 양은 처음 있었던 양의 1/2n로 줄어들게 된다. 측정할 수 있는 양과 반감기를 생각하면 14C를 이용하여 추정할 수 있는 과거연도는 최대로 약 5~6만년 정도된다. 예전에는 14C 가 붕괴되어 방출하는 베타선을 측정하여 14C의 양을 알아냈지만, 최근에는 보다 정밀한 질량분석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시료의 양이 적어도 분석이 가능한 경우가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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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방법의 제한과 적용범위
탄소 연대측정법은 14C의 양과 생물이 흡수하는 비율이 일정하다는 가정에 있다. 다른 과학방법과 마찬가지로 가정을 하고, 측정한 결과를 놓고 그것에 맞는지 여부를 놓고 해석을 한다. 그런데 14C가 만들어지는 양 혹은 비율은 일정할까? 다행스럽게도 자동차 연료를 태우고 배출되는 CO2에는 14CO2는 없다. 왜냐하면 원유가 만들어지려면 동식물이 죽고나서 14C의 반감기의 몇 백배이상의 세월이 흘러야 되기 때문에 원유에 있었던 14C는 모두 방사성 붕괴되어 사라졌다. 그렇지만 인간활동으로 대폭 늘어난 CO2에는 14C는 없지만, 12C와 14C의 비율은 많이 감소하였다. 또한 1940년 이후에 핵 실험을 했을 때 혹은 우주선이 일시적으로 많이 쏟아질 때에는 14C의 양이 많아진다. 그러므로 특정한 시기에 얻은 시료들의 연대 추정에는 변수를 고려해서 측정을 해야 연대추정에 대한 오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나무가 죽으면 탄소의 순환이 멈추는 것처럼 식물을 먹고 살았던 동물과 인간도 죽으면 당연히 탄소의 순환이 멈춘다. 그러므로 뼈 조각 등에 남아있던 14C의 양을 측정하고 반감기를 이용하면 뼈의 생성 년도를 계산할 수 있다. 결국 14C를 이용하여 연대를 알아낼 수 있는 시료는 뼈, 옷, 목재, 식물 섬유 등으로 제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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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토리노 수의(Turin Shroud, 예수의 수의)의 진부 여부를 알아내기 위해서 3곳의 연구소에서 측정한 탄소 연대 결과는 모두 일치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의 생존시기와 비교하여 약 1000년 이상의 차이가 있는 결과였다. 와인을 비롯한 각종 과일주의 가짜 여부를 판단에도 탄소연대 측정법이 이용된다. 왜냐하면 원유에서 뽑은 알코올로 담근 술에는 당연히 14C가 검출되지 않는다. 원유에 있었던 14C성분은 이미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14C의 검출여부만 확인하면 될 일이다. 리비가 개발한 탄소 연대측정법은 정확히 시대를 알고 있는 시료와 비교하여 측정계수를 도입하는 등 오차를 줄이려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현재에는 연대측정을 위한 신뢰할 수 있는 측정법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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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여인형 동국대 화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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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KMOOC(한국형 온라인 공개강좌)에서 ‘삶은 화학물질과의 소통이다’를 강의하고 있다. 동국대 화학과 교수로 31년간 재직했으며, 분석화학 및 전기화학을 가르쳤다. 네이버 ‘화학산책’에 기고한 다양한 글들(총 조회수 1200만회 이상)과 눈높이 강연(학생 및 일반인 대상 약 130회 이상)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화학 상식 및 과학문화가 정착이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 <퀴리부인은 무슨 비누를 썼을까? 2.0>, <공기로 빵을 만든다고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