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CT 케미인터뷰 <우리끼리 케미>
글로벌 패션업계를 뒤흔든
지구환경 되살리는 ‘폐섬유 혁신’

우리가 입다 버리는 옷이 지구를 살리는 자원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어떨까요? 최근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세계적인 의류 브랜드들이 한국의 한 신생 연구기관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올해 3월 국내 화학소재·부품 생태계의 새로운 기술자립 거점으로 설립된 ‘화학연 상생기술협력센터’입니다. 글로벌 패션업계가 단순한 친환경 트렌드를 넘어 더욱 강력해지는 ESG, RE100, 생산자책임제 등의 탄소중립 규제 환경을 단숨에 돌파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혁신기술이 탄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Chapter 01
섬유 재활용의 판이 뒤집어진다
현재 의류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폐기물을 배출하는 분야 중 하나입니다. 다양한 소재와 염료, 첨가제가 복잡하게 얽힌 섬유는 재활용이 까다롭고 경제성도 낮아 대부분 소각되거나 매립됩니다. 대부분 컨테이너에 실려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개발도상국으로 향하는 헌옷들은 극히 일부인 5%만 재활용되고 95%는 마구잡이로 버려지고 있습니다.
옷을 만드는 염색 과정도 버려지는 헌옷 이상으로 환경에 악영향을 줍니다. 염색과정이 반복되는 섬유·의류산업은 전 세계 물 소비량의 2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많은 물을 쓰는 만큼 폐수의 배출 비중도 매우 높습니다. 또한 고온의 열처리가 반복되는 까닭에 지구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0%가 섬유·의류산업에서 나온다는 UN 보고서도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2023년 화학연 조정모 박사팀이 세계 최초로 ‘폐섬유 재활용 기술’을 개발했습니다. 선별과 분리가 어려워 소각이나 매립 외에는 방법이 없었던 유색섬유와 혼방섬유를 재활용하는 기술이지요. 나아가 화학연 연구진은 폐섬유 재활용 기술과 연계해 한층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으로 합성섬유 원료를 생산하는 저온 해중합 반응 기술도 개발했습니다.
이 같은 혁신성에 힘입어 화학연의 폐섬유 재활용 기술은 미국화학회지 창간 10주년 기념호의 표지를 장식한 데 이어 2024 국가연구개발우수성과 100선에도 선정됐습니다. 국내외를 망라하는 과학기술계의 핫 이슈가 된 것이지요. 연구 책임자인 조정모 박사는 “매우 도전적인 연구였다”고 소회를 밝힙니다.

한국화학연구원 조정모 박사
“처음에는 선별 수거와 원료 재활용률이 높은 폐PET의 재활용을 연구했습니다. 하지만 기업들도 영리 차원에서 뛰어들다 보니 더 어렵고 까다로운 연구를 기획하면서 의류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섬유의 60% 이상 비중을 차지하는 폴리에스터를 재생원료로 전환해 의류 쓰레기 발생량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보자고 마음먹었지요.” (화학연 조정모 박사).
조 박사는 섬유 재활용 기술의 핵심 난제로 ‘염료 제거’를 꼽았습니다. 우리가 입는 의류는 단일 소재 제품을 찾기 힘들 만큼 매우 다양한 재질과 복잡한 구조로 이뤄져 있습니다. 기능성을 부여하기 위해서이지요. 염료도 쉽게 빠지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어 그만큼 제거가 어렵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 박사는 염색공학과 섬유공학까지 독학하며 염료의 구조와 성질을 분석해 결국 선택적 화학 반응을 통해 염료와 첨가제를 제거·추출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 것인데요.
Chapter 02
환경을 살리겠다는 공동의 철학
조 박사팀의 연구 성과는 발표 직후 곧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고 국내외의 많은 기업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게 됐습니다. 이 가운데는 1999년 설립 이후 건축물의 누수를 막기 위한 방수 기술을 끊임없이 연구해 온 토종기업 ‘리뉴시스템’도 있었습니다. 이 회사는 특히 폐유·폐타이어 등의 폐자원을 재활용한 터보씰과 터보시트가 방수재의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 제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 두 제품을 결합한 ‘폴리아스 공법’은 국토교통부와 행정안전부의 신기술로 지정되기도 했습니다.
이종용 리뉴시스템 대표는 방수소재로 박사 학위를 받은 건축공학자입니다. 어릴 때부터 환경과 인간의 관계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일련의 대형사건들을 계기로 폐자원을 소생시키는 친환경 방수재 개발에 뛰어들게 되었는데요. 바로 성수대교(1994)와 삼풍백화점(1995) 붕괴사고입니다. 리뉴시스템(Renew system)이란 회사명도 ‘새롭게 살린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종용 리뉴시스템 대표
“빠른 산업화로 인한 안전 불감증이 일으킨 두 사건을 보며 구조물 안전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잘 다니던 굴지의 자동차 기업을 뛰쳐나와 창업에 뛰어들며 고생도 많았습니다. 사업 초기 세 번의 폭발사고와 적대적 인수합병의 위기를 겪었지요.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기술 개발만큼은 멈추지 않았던 덕분에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방수 기술 역량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종용 리뉴시스템 대표).

리뉴시스템의 기술은 국내외에서 이미 입증됐습니다. 인천공항, 국립민속박물관, 과천선 지하철, 원자력연구원 중이온가속기 등 국내 주요 구조물뿐만이 아닙니다. 미국 보스턴 빅딕 지하차도, 샌프란시스코 BART 지하철, 싱가포르 마리나 해안 고속도로 등 해외 20개국에서도 2500건 이상의 시공을 마쳤습니다. 특히 싱가포르에서는 리뉴시스템이 보수한 2개 구간은 13년간 단 한 번의 누수도 없었지만, 다른 업체가 시공한 3개 구간에서는 누수가 발생해 추가 보수를 의뢰받는 등 기술력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사업이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오른 뒤에도 이 대표는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더 친환경적이고 경제적인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을 찾았습니다. 그러던 중 화학연의 혁신적인 폐섬유 재활용 기술을 알게 되었지요. 회사의 철학과 너무 잘 맞는 기술인 까닭에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조정모 박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조 박사는 “앞서 많은 대기업들이 기술이전을 타진해 왔지만 리뉴시스템만큼 폐자원 재활용에 관심과 의지가 확고한 곳은 없었다”면서 “짧은 대화였지만 이 대표의 열의와 진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져 저 역시 별다른 고민 없이 금세 의기투합할 수 있었다”고 기억합니다.
Chapter 03
기술 상용화의 가속기 ‘상생기술협력센터’
단순한 기술이전을 넘어 친환경 소재의 실용화라는 공동의 철학을 공유하는 파트너 리뉴시스템과의 협업은 화학연이 탄생시킨 합성섬유 재활용 기술의 상용화에 탄력을 더하고 있습니다. 조정모 박사팀과 리뉴시스템은 현재 화학연 상생기술협력센터에 함께 입주해 공동연구를 진행 중입니다. 늘 붙어 있으니 실시간 피드백과 소통이 가능해졌고 기술 개발 속도도 눈에 띄게 빨라졌습니다.
폐 PET의 회수공정 기술은 본격적인 양산을 앞두고 현재 리뉴시스템 공장에 설치된 연간 1만 리터 규모의 반응기에서 이미 시제품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혼방섬유의 화학적 선별기술은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실증에 들어갑니다. 화학연과 리뉴시스템의 폐섬유 재활용 기술은 섬유⋅의류 재활용의 걸림돌로 여겨지던 혼방섬유를 재질별로 분리하고 염료 제거까지 해결할 수 있어 산업계의 반응도 뜨겁습니다.
이미 스판덱스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인 효성티앤씨의 친환경 섬유 브랜드에 제품 공급이 확정된 가운데, 세계 각지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들에서도 문의가 쏟아지며 2030년경에는 최소 수천억 원 규모의 세계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이종용 리뉴시스템 대표는 “화학연의 폐섬유 재활용 기술은 다양한 업종에 적용이 가능해 향후 얼마나 더 많은 분야로 확대될지 가늠조차 힘든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조정모 박사는 “연구자의 가장 큰 보람은 실험실 기술이 사장되지 않고 상용화되는 것”이라며 “우리 기술의 확산이 단순한 수익을 넘어 환경과 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 데 더 크게 기여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화학연과 리뉴시스템이 완성해가는 폐섬유 재활용 기술이 지구 환경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어떻게 이끌어갈지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집니다. 앞으로도 화학연의 혁신 기술이 산업 현장에서, 또 우리 일상에서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지 지속적으로 소개해드릴 예정입니다. 대한민국의 화학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그날까지 큰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