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CT 케미인터뷰
호기심 천국 자녀 피곤하다면?
“과학자가 천직…힘들어도 피하면 안돼요”

“돛이랑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15년 전 한국을 넘어 중화권 한류 열풍의 기폭제가 된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멋진 대사인데요. 오늘 케미가 만난 화학연 최경민 박사(의약바이오연구본부)는 자신이 연구하는 ‘유기화학’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합니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전 세계 누구와도 자유롭게 소통하며 상상할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이지요. 이공계인들 사이에서도 어렵기로 소문난 유기화학의 매력을 귀에 쏙쏙 들어오게 설명해주는 이 분, 알고 보니 유명 과학 유튜버들도 서로 모시고 싶어 하는 촉망받는 과학커뮤니케이터이기도 합니다.
Chapter 01
이공계도 기피하는 유기화학 매력은?
Q. 안녕하세요 박사님, 먼저 박사님이 연구하시는 유기화학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세요.
유기화학은 원자번호 6번 탄소(C)를 중심으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형태와 성질의 화합물을 연구하는 학문입니다. 탄소는 흥미롭게도 탄소 원자 1개가 수소, 산소, 질소, 인, 금속 등 최대 4개의 원자와 결합할 수 있지요. 덕분에 어떤 원소보다 높은 화학적 다양성으로 수많은 화합물을 만들어내며 세포와 DNA부터 식량과 에너지까지,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생명계와 인류문명의 든든한 뿌리가 되어왔습니다.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수백 만 종의 탄소 화합물이 새롭게 발견되거나 인공적으로 합성되어 탄소섬유, 그래핀 같은 신소재부터 첨단 의약품까지 끊임없이 기술혁신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Q. 화학연에서는 주로 어떤 연구를 하고 계신가요?
저는 유기화학의 방대한 갈래 중에 특히 유기 화합물의 설계와 합성에 집중하는 유기합성(Organic Synthesis) 분야의 연구자입니다. 이를 테면 다양한 재료와 레시피로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요. 화학연에서 주로 하고 있는 연구는 유기 화합물을 이용해 저분자 신약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아세트아미노펜, 아스피린, 타미플루 같은 약들이 분자 크기가 작은 화합물로 만든 저분자 약물인데요. 최근에는 암이나 유전병 같은 난치성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저분자 신약 연구가 활발합니다. 저도 유전성 혈액질환인 겸형적혈구병(Sickle Cell Disease, SCD) 또는 다양한 암 치료를 목표로 저분자 신약을 개발하는 연구를 하고 있고 지금 한창 논문 발표를 위한 막바지 정리에 힘쓰고 있어요.

Q. 연구 과정에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학위 과정과 박사후연구원 시절에 집중했던 연구는 복잡한 분자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유기화학 연구를 통해 익힌 분자 구조와 반응성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분자 하나에 더 효율적이고 선택적인 성질을 부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다 2023년 화학연에 입사해 의약화학 분야에 몸담게 됐는데 그간 알던 것과 다른 것이 많아 꽤 당황스러웠습니다. 이전까지 했던 연구에서는 논문이든 책이든 기댈 것이 있었는데, 저분자 유기화합물의 인체 적용은 기존의 제 상식과 이해를 뛰어넘는 황당한 실험 결과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것처럼 종잡기 힘든 연구 결과들이 외려 더 연구의 매력을 높이고 있지요.
Q. 박사님의 유년기와 학창 시절이 궁금합니다.
지금도 변함이 없는 천성이긴 한데, 어렸을 때부터 늘 물음표를 달고 사는 것 같아요. 친지 분들께서는 제가 말이 터지면서부터 이미 엄청나게 질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고 하시더군요. 정말 다행이었던 건 부모님께서 아무리 피곤하고, 설령 몰라서 대답을 못 할지언정 질문 세례를 절대 피하지 않고 모두 받아주셨다는 겁니다. 덕분에 일이든 사람이든 늘 ‘왜?’라는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결국 호기심이 천직인 과학자가 될 수 있었던 거라 믿고 있습니다. 여기에 곧 결혼을 앞둔 여자 친구도 저처럼 묻고 답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 제 인생의 행운이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고 느껴요.
Q. 연구실 밖에서도 ‘과학자가 내 천직이구나’ 싶을 때가 많으신가요?
그럼요. 연구든 사람이든 대상을 가리지 않고 늘 질문하고 답을 구하기 좋아하는 성향이 일상생활에서도 불쑥불쑥 샘솟곤 합니다. 그럴 때마다 천성이 과학자라는 사실을 새삼 자각하곤 하지요. 예를 들어 최근 화학연과 조금 먼 곳에 살 집을 구해서 예전보다 오가는 시간이 많이 걸려요. 그래서 여러 가지 변수들을 고려해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출근할 수 있는 시간대를 찾는 실험을 거듭한 끝에 얼마 전 최적의 기상 시간을 구하게 됐습니다.
Q. 일상이 실험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실험의 과정은 많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하나씩 하나씩 변인을 바꿔 가며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이 지루하고 고단하지요. 하지만 결국 제가 원하는 통제의 영역으로 실험을 끌고 갔을 때는 세상 어디서도 느끼지 못할 큰 성취감을 얻곤 합니다. 제 경험을 논문으로 정리해 다른 사람들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도울 수 있다는 기쁨도 크고요.
Chapter 02
초이 반응(Choi Reaction)의 꿈

Q. 연구 인생의 ‘터닝 포인트’라고 하실 만한 순간이 있으셨나요?
화학연 합류가 지금까지 경험한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화와 소통을 좋아하는 제 성격이 연구의 시작부터 끝까지 여러 분야의 연구자분들과 협업하는 화학연의 공동연구 방식과 아주 잘 맞는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드는 유기 화합물의 적용 범위가 생명체로까지 넓어지며 이전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연구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되었고요.


Q. 인터뷰 자료를 찾다보니 방송에서 여러 번 ‘큐브 달인’으로 소개되신 적이 있으시네요.
이런 경험들이 요즘 과학커뮤니케이터로 활동하시는 데도 도움이 되시나요?
중학생 때부터 큐브 동호회 활동을 한 인연으로 SBS <생활의 달인>, <스타킹>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었어요. 저도 방학특집 방송을 보고 재미있겠다 싶어 갖게 된 취미인데, 야구선수들이 늘 공을 쥐고 사는 것처럼 손에서 큐브를 놓지 않다보니 실력이 부쩍 늘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방송보다 더 즐거웠던 건 제가 가르치는 신입 동호회원들이 빠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제 지식과 경험을 누군가와 나눌 수 있다는 게 무척 특별한 경험이었지요. 그래서 결국 대학도 교사가 될 수 있는 화학교육과로 진학했는데요. 전업 과학자가 된 지금도 과학으로 소통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제가 경험하고 있는 여러 과학자들의 치열한 삶과 꿈을 학생, 일반인들에게 전달하는 게 기뻐서 가능할 때마다 시간을 쪼개 대중강연과 유튜브 출연 등에 응하고 있어요.

Q. 최 박사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유기화학계에서는 헤크(Heck) 반응, 네기시(Negishi) 반응처럼 실용성과 범용성이 입증된 반응에 연구자의 이름을 붙여주는 전통이 있습니다. 저도 유기화학자로서 제 이름이 붙은 유기반응 하나는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습니다. 유기반응 만큼은 아니지만, 박사후연구원 시절 우연찮게 유기 화합물의 반응성을 조절하는 분자를 연구하다 제 이름이 붙은 화합물을 만든 적도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시약을 써 봐도 좀처럼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 아예 직접 만들어보자고 한 게 뜻밖의 결과로 이어진 것인데요. 유기화학은 공부도 어렵고 실험도 복잡한 매우 고된 학문이지만 세상만물 성질의 최소 단위인 분자를 자유롭게 합성할 수 있다는 기쁨이 있습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가장 처음 발견하는 보람이라고 할까요. 연구자로서의 개인적인 소망과 더불어 과학자들의 이런 삶의 즐거움을 대중과 나누며 더 많은 어린이, 청소년들이 과학자로 성장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는 것도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