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

People&Collabo

화학식으로 빚는 철화분청사기 “계룡산도예촌으로 놀러오세요”

작성자  조회수888 등록일2025-06-05
케미인터뷰.png [4,770.2 KB]

KRICT 케미터뷰

 

 

화학식으로 빚는 철화분청사기

“계룡산도예촌으로 놀러오세요”

 

 

 

‘노잼도시’ 대전의 반격이 무섭습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최근 대전을 찾는 방문자 증가율이 전국 17개시도 중 인천에 이어 2위를 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등공신 성심당과 함께 우승 경쟁에 나선 지역연고팀(한화이글스·대전하나시티즌)들의 인기가 관광객 증가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대전 관광에 대한 높은 관심은 다양해지고 있는 내비게이션 검색 데이터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성심당, 대전역, 오월드 같은 기존의 명소뿐만 아니라 국립중앙과학관, 엑스포과학공원, 대전시민천문대처럼 과학도시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장소들의 검색순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하는데요. 대전을 찾는 여행자들이 주목해야 할 곳이 하나 또 있습니다. 바로 예술문화와 과학정신이 함께 살아 숨쉬는 ‘계룡산도예촌’이 그곳입니다.


Chapter 01

‘흙과 불의 예술’에 과학을 더하다

 

 

계룡산국립공원 기슭 실개천이 흐르는 전원풍경 속에 소박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계룡산도예촌은 10여 명의 도예가들이 오손도손 마을을 이루어 조선시대 철화분청사기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전국 유일의 도예촌입니다. 개인공방, 종합전시장, 도자예술공원, 전통적인 오름가마 등의 볼거리와 함께 독특하고 개성적인 카페들도 많아 연중 나들이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대전시민들의 숨은 명소이지요.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이곳에 처음 계룡산도예촌이 자리를 잡는 데 가장 크게 공헌한 인물이 뜻밖에도 화학연 출신의 과학자 유영문 박사입니다. 화학자가 세운 도예촌이라니, 그 특별한 인연이 어떻게 시작된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금도 이곳에 기거하며 연구와 집필, 텃밭 가꾸기를 하면서도 구석구석 도예촌의 살림살이를 돌보보느라 바쁘게 살고 있는 유 박사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때마침 도예를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에게 강의 중이던 그는 칠판 가득 도자기 재료에 대한 화학식을 써내려가며 유약과 소성의 원리를 가르치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각양각색의 철화분청사기들과 도자기 시험편·시제품들이 뒤섞인 공간을 훑고 있자니 이곳이 공방인지 실험실인지 조금 헷갈리게 만듭니다.

 

“많은 분들이 제가 도예가로 새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시는데, 아직은 아닙니다. 저는 여전히 천직인 연구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흙과 유약으로 도자기들도 만들고 있지만 프로페셔널한 작품 활동과는 거리가 멉니다. 먼 길을 마다 않고 찾아오는 청년작가나 도예가 지망생들이 있으면 흙과 유약, 불의 과학을 통해 자신만의 도자예술적 표현방법을 스스로 찾아나갈 수 있도록 사사를 해주고 있습니다. 혼자 있을 때에는 화학연의 30대 새내기 연구원 시절 지역의 젊은 도예작가들과 맺은 인연이 계기가 되어 어느덧 30년 넘게 연구를 이어오고 있는 철화분청사기의 과학적 기원에 관한 실험을 하고 있지요. 그리고 틈틈이 청자, 백자, 진사, 천목 등 우리나라 전통 유약의 정체를 밝히는 데에도 흥미를 가지고 실험을 하고 있어요.”

유 박사가 화학연에서 처음 연구자의 길을 밟기 시작한 것은 1984년 29살의 나이 때부터입니다. 학부에서 세라믹, 대학원에서 유리 결정을 전공한 뒤 화학연에서 광학재료와 단결정 성장 연구에 주력하였지요. 이후 한국광기술원 수석연구원과 부경대 교수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LED 반도체의 권위자로 국가주력산업인 디스플레이 산업과 조명 산업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해왔는데요. 과학기술인인 그가 도예라는 낯선 예술세계와 조우하게 된 것도 유리와 결정이라는 물질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세라믹과 반도체의 제조 기술, 빛과 색에 대한 지식이 접점이 되었습니다.


Chapter 02

화학연 시절, 재능기부에서 시작된 계룡산도예촌

 

“대전에 정착하던 시기에 아내가 취미로 도예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 당시 청년작가들이 경험법칙으로 도자기를 구울 뿐, 소성이나 유약 같은 주요 재료의 성질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요즘 말로 ‘재능기부’ 차원에서 1987년부터 ‘도연회’라는 이름의 도예재료연구회를 조직해 젊은 작가들에게 제 지식을 나누기 시작했는데 입소문을 타고 전국 각지에서 마흔 명 넘게 청년작가들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보니 강의록을 만들게 되었고 함께 실험한 데이터를 모아 소논문집도 2권을 만들면서, 나중에는 도예촌을 만들어보자는 발상에 이르게 됐습니다.”

혼자 어렵게 공방을 꾸려가고 있는 도예가들이 한 곳에 마을을 이뤄 정진한다면 작품 활동과 경제적 여건 모두 더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유 박사의 아이디어에 함께하던 10명의 청년작가들이 뜻을 모았습니다. 그렇게 1990년 싹을 틔운 계룡산도예촌의 꿈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실로 많은 난관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철화분청사기의 맥을 잇는 도예촌 조성을 지자체에 제안하고, 적합한 후보지를 찾아 길도 없는 산골을 헤매던 노력의 선두에는 늘 유 박사가 있었습니다.

“원래는 지자체가 보유한 국유지에 도예촌을 만들자는 계획이었는데 진행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저희가 원했던 것은 멀리는 고려 시대부터 도자기를 구워온 흔적들이 있는 곳에서 유구한 역사의 전통을 이어가겠다는 것이었는데, 지자체가 보유한 국유지는 깊은 산중일지라도 마땅한 곳이 없었기 때문에 당초 계획과 달리 직접 부지를 찾아나서야 했고, 부지도 선구매해야 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제가 자금을 구하여 선구매를 하고, 1992년 지자체의 허가를 받은 다음에, 청년작가들이 신청한 대로 부지를 나누고, 토목공사를 한 끝에 1993년 도예촌의 문을 열 수 있게 되었습니다.”


Chapter 03

과학과 예술의 융합도시

 

 

어느덧 32년의 오랜 역사 속에서 청년작가들이 원숙한 도예가가 되었고, 계룡산도예촌은 대전과 충남 지역의 중요한 문화예술 자산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해마다 많은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아 서로 다른 독특한 구조의 공방과 전시관을 돌며 다양한 형태의 작품들을 관람하고, 때로는 작가들과 조우해 차를 마시고 담소를 나누는 행운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한민족 도자예술의 정수로 불리는 철화분청사기의 유래를 찾고 있는 유 박사의 연구도 조용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본 오사카의 동양도자미술관에 가면 일제 강점기 계룡산 인근에서 출토된 철화분청사기 명품들이 상당수 소장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곳에서는 주로 파편들만 발견되고 있는데요. 하지만 계룡산은 여전히 승화된 철화분청사기를 만들 수 있는 천연의 보고입니다. 제가 하는 연구는 우리 선조들이 이곳에서 철화분청사기를 만들 때 사용했을 재료 기법을 복원하는 것입니다. 자연 원료 중 어떤 광물을 사용했는지 찾아내 보다 원형에 가까운 철화분청사기를 복원해내는 게 목표입니다. 유물 분석, 광물 합성, 철화안료 등의 제조, 소성과정 고찰, 작품 적용 등 산적한 문제들이 있으나 30여 년의 연구 끝에 이제 어느 정도 제 추론이 맞다는 게 확실해지고 있는 만큼 조만간 논문으로 여러분께 결과를 알려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유 박사의 요즘 또 다른 주요 관심사는 새로운 포맷의 과학대중화 사업입니다. 계룡산도예촌의 작가들과 과학도시 대전의 연구자들이 함께 도자기에 숨어 있는 과학적 지식과 기술을 시민들에게 전하는 문화예술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 것인데요. 과학과 예술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상호작용하며 발전해 왔는지를 여러 가지 화학 실험과 함께하는 도예 워크숍, 도서와 소셜미디어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알기 쉽게 전한다는 취지에 벌써부터 많은 도예가와 연구소 관계자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유 박사로서는 어쩌면 제2의 재능기부이자 또 다른 꿈의 시작이기도 할 텐데요. 도자기와 과학의 융합이라는 그의 특별하고도 오랜 여정이 한국 과학기술의 심장 대전을 상징하는 문화자산으로 발전해 더욱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