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CT 케미인터뷰
"과학도 팀 스포츠…함께 뛰고 함께 분해했다"
'올해의 KRICT인상' 김필호 박사

화학연은 1994년부터 한 해 동안 가장 우수한 연구 성과를 거둔 연구자에게 ‘올해의 KRICT인상’을 수여하고 있습니다. 수상자의 이름은 행정동 1층 벽면에 명패로 새겨 그 공로를 길이 기억하도록 하고 있지요. 올해는 특히 최종 수상자 선정에 동료 연구자들의 투표결과가 반영되기 시작한 첫 번째 해입니다. 그런 만큼 한층 업그레이드된 올해의 KRICT인상이 과연 누구에게 돌아갈지 더욱 이목이 집중됐는데요. 지난 9월 1일 열린 제49주년 창립기념식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영예의 주인공은 ‘김필호 박사’입니다.
Chapter 01
국내 최초 '한·미 동시 임상 진입'
김필호 박사는 ‘표적 단백질 분해’ 기반 신약 개발이라는 혁신적 접근을 통해 국내 신약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앞서 2021년과 2022년에도 우수연구원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 기존 치료제에 내성을 보이는 난치성 혈액암을 대상으로 표적 단백질을 직접 분해하는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 후보물질 개발에 성공하며 ‘올해의 KRICT인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김필호 박사는 ‘표적 단백질 분해’ 기반 신약 개발이라는 혁신적 접근을 통해 국내 신약 연구의 지평을 넓히는 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앞서 2021년과 2022년에도 우수연구원상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 기존 치료제에 내성을 보이는 난치성 혈액암을 대상으로 표적 단백질을 직접 분해하는 새로운 기전의 치료제 후보물질 개발에 성공하며 ‘올해의 KRICT인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Q. 먼저 ‘올해의 KRICT인상’ 수상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화학연에는 연구 분야별로 워낙 훌륭한 성과를 거두고 계신 연구자들이 많아 크게 기대하지 못했습니다. 최종 후보 중 한 명으로 뽑혔다는 소식에도 반신반의했지요. 결국 수상자로 결정이 된 뒤에는 사실 기쁜 마음보다 쑥스럽고 죄송한 마음이 더 컸는데, 함께 후보에 오른 연구자께서 축하해 주셔서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이후 소셜미디어로 수상 소식을 접한 지인들의 축하인사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데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Q. 이번 수상의 계기가 된 ‘PROTAC 기반 BTK 분해제’가 무엇인지 좀 더 설명 부탁드립니다.
BTK(Bruton's Tyrosine Kinase)는 우리 몸의 면역시스템인 B세포의 성장과 생존에 관여하는 효소입니다. 그런데 과하게 활성화되면 암세포의 증식을 돕기 때문에 이를 억제하거나 제거하는 것이 좋은 항암 치료 전략이 됩니다. PROTAC(Proteolysis Targeting Chimera)은 기존의 약물이 단백질의 기능을 억제하는 방식인 것과 달리 문제가 되는 단백질 자체를 세포 내에서 선택적으로 분해하는 기술입니다. 우리 한국화학연구원 표적단백질분해제(TPD)팀이 BTK PROTAC 기술을 개발해 돌연변이에 의한 내성 문제로 종양이 다시 재발하는 기존 BTK 억제제의 한계를 돌파한 것이지요.
Q. 난치성 혈액암 치료의 새로운 희망이 되고 있는 박사님의 연구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2015년 여름 우리 TPD팀의 하재두 박사께서 단체 대화방에 동물실험에서 약효가 입증된 PROTAC 연구 논문을 공유하셨고, 바로 다음날부터 황종연 박사께서 PROTAC 합성 실험에 돌입했습니다. 아마도 비공식적으로 국내에서는 최초의 PROTAC 합성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때마침 그해 연말부터 혁신신약 개발을 위한 정부출연연 융합과제가 시작되며 TPD팀의 연구가 제대로 탄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화학연 TPD팀이 우리나라에서 선구적이고 독창적인 PROTAC과 molecular glue degrader 연구 그룹이 된 것이지요. 그 과정에서 제가 이미 개발한 새로운 BTK 억제제를 활용해 BTK PROTAC을 개발해 보자는 논의가 이뤄지며, 2019년부터 주요사업으로 BTK PROTAC 개발 연구가 시작되었습니다.
Chapter 02
“뜻대로 안 되는 신약개발…그래서 더 끌려”

김필호 박사가 개발한 혈액암 치료용 표적 단백질 분해제 후보물질은 2019년 하반기에 국내 신약 벤처기업 ‘유빅스테라퓨틱스’에 기술이전 되었습니다. 김 박사는 “창업과 거의 동시에 우리 기술을 이전받은 기업이 이제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는 시점까지 성장과정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뜻 깊은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Q. 이번 연구를 통해 박사님께서 얻은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일까요?
화학연 연구진, 그리고 기술이전 기업과 우수한 화합물을 만들기 위해 함께 땀 흘렸던 팀워크입니다. PROTAC 기반 BTK 분해제는 전 세계적으로도 초기 단계의 연구라 큰 위험부담이 있었는데도 화학연과 기업의 동료 연구자들 모두가 마음을 모아 연구에 매진해주신 덕분에 좋은 결과가 탄생할 수 있었습니다. 기술이전 이후에도 약 2년에 걸쳐 저희와 함께 공동연구를 하며 PROTAC 기반 BTK 분해제 화합물이 약 350종으로 늘어났고, 활성과 독성을 평가하는 비임상시험도 유빅스테라퓨틱스에서 잘 마무리 해주셨습니다. 유빅스테라퓨틱스는 이 같은 성과에 힘입어 대규모 투자유치에 성공하며 직원 수가 50명까지 불어나게 되었고, 2024년에는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임상 1상에 진입해 국내에서는 올해 첫 환자 투여가 개시되었습니다.

Q. 박사님께서 생각하시는 의약화학 혹은 신약개발의 묘미는 무엇일까요?
25년간 신약개발 연구를 하며 요즘 들어 더 확실하게 느끼는 것은 ‘연구가 정말 지리하고 고단한 여정’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의약화학 연구는 늘 계획대로 되지 않습니다. 신약 개발은 그중에서도 더 도전적이고 모험적인 분야이고요. 하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입니다. 동료들과 함께 땀 흘리며 목표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간다는 점에서 단체 스포츠와도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고요.
Q. 요즘 몰두하고 계신 연구는 어떤 것인가요?
여전히 세계 누구도 정상에 가보지 못한 미지의 산이라고 할 수 있는 단백질 분해기술 기반의 신약 연구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그중 특히 분자 접착제(Molecular glue)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분자 접착제는 말 그대로 기존에 상호작용하지 않던 단백질 사이의 결합을 유도하거나 강화하는 저분자 화합물이에요. 이를 이용하게 되면 여러 가지 암과 자가면역질환 등을 유발하는 단백질에 분해를 유도하는 물질을 붙여 제거할 수 있습니다.
Chapter 03
원소기호에 반한 소년

김 박사는 미국 UC 데이비스에서 유기합성 박사 과정을 마치고 NIH에서 결핵 신약 연구를 하며 유기화학의 다양한 응용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되었다고 합니다. 때마침 결핵 신약 연구팀이 있는 화학연에 자연스럽게 합류한 이후 2013년부터 항암제 연구, 2015년부터는 단백질 분해제 연구에 몰두해왔는데요. 이번 표적 단백질 분해 기반 신약 개발 성과가 NIH 박사후연구원 시절 결핵 치료제를 연구하며 품었던 사명감의 실현에도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란 기대감이 큽니다.
Q. 연구자의 길을 걷게 되신 계기가 있나요?
학창 시절의 저는 운동을 좋아하던 평범한 학생이었습니다. 학교 공부는 과목에 상관없이 다 좋아해서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하는 상황이 매우 안타까웠는데요. 중학생 때 물상이란 과목에서 원소기호를 처음 접하고 너무 재미있었던 게 기억나 결국 이과를 선택했습니다. 고교의 이과 과정에서도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 일부 과목을 선택해 입시를 준비해야 했는데, 저는 세상 모든 물질의 기원을 탐구하는 화학이 특히 재미있었습니다. 덕분에 수십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Q. 운동도 여전히 좋은 취미이신가요?
그럼요. 축구, 야구, 스키, 등산까지 화학연의 스포츠 동호회 대부분에 참여하고 있는데 공교롭게도 축구 동호회에서는 전남중 박사(2023), 박인준 박사(2024) 그리고 올해 저까지 3년 연속 올해의 KRICT인상이 배출돼 더 기뻐해주시고 계십니다. 요즘 여러 가지 운동을 하면서 깨닫는 점은 승리나 완등이 아니라 과정 속에 기쁨이 있는 게 연구와 정말 닮았다는 것입니다. 연구는 몸을 힘들게 하는 운동처럼 고단한 여정입니다. 정점을 향해 가는 길에 늘 크고 작은 어려움들이 산재해 있지요. 하지만 그 안에서 의미와 재미를 찾는다면 모두 소소한 보람과 성취감의 대상이 됩니다. 제가 음악과 미술에 재능이 없는 대신 틈틈이 음악 공연과 미술관, 박물관을 자주 찾는 편입니다. 평소 접하기 힘든 예술작품을 보고 들으면 예술가들의 능력에 감탄하면서 동시에 저도 마음이 정화되고 재충전이 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NIH에서 결핵 치료제를 연구하며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신약을 만들고 싶다’는 꿈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제가 배운 화학을 바탕으로 신약개발 연구에 매진하여 선한 가치(goodwill value)를 실현할 수 있는 신약 개발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이번 연구 성과와 올해의 KRICT인상 수상을 발판 삼아 누구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신약 개발이란 꿈을 향해 한층 정진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