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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Collabo

생명이 붐비는 텃밭

작성자  조회수191 등록일2023-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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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스토리

 

생명이 붐비는

텃밭

 

한국화학연구원 텃밭농장 동호회

 

흙냄새 맡으면/ 세상에 외롭지 않다/ 뒷산에 올라가 삭정이로 흙을 파헤치고 거기 코를 박는다.

아아, 이 흙냄새!/ 이 깊은 향기는 어디 가서 닿는가/ 머나멀다. 생명이다. 그 원천. 크나큰 품. 깊은 숨.

생명이 다아 여기 모인다./ 이 향기 속에 붐빈다./ 감자처럼 주렁주렁 딸려 올라온다.

흙냄새여 생명의 한통속이여.

(정현종 詩 ‘흙냄새’)

 

 

텃밭 혹은 생명의 동아리

 

자연과 생명현상에 대한 사유를 문학으로 형상화해온 정현종 시인은 흙냄새를 ‘생명의 동아리’라고도 표현합니다. 지구 표면의 암석이 분해된 무기물과 동식물에서 발생하는 유기물이 뒤섞여 이뤄진 물질이 흙이라는 지식백과의 설명이 이렇게 한 문장으로 간결하게 정리될 수도 있구나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데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이곳저곳 쪼그려 앉아 흙을 뒤집고 작물을 매만지는 화학연 텃밭농장 동호회원들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혹시 토양의 구성원소나 흙냄새 원인물질이라는 지오스민(Geosmin)의 화학적 작용을 궁리하고 있지 않을까, 쓰잘머리 없던 상상 위로 이런 목소리들이 도란도란 오갑니다. “그 집은 고구마 언제 캘 겨.” “우리 너무 많아요. 좀 가져가세요.” “그러게 한 고랑만 심어도 충분하다잖아.” “아이고 다리야!”

 

화학연 텃밭농장 동호회는 연구와 업무의 바쁜 환경 속에서 잠시나마 짬을 내 자연과 호흡하고 동료들과도 정을 나누자는 취지로 2015년 첫 씨앗을 뿌렸는데요. 지금은 퇴직한 초대회장 김봉진 박사와 뒤를이은 최용호 책임연구원의 오랜 헌신이 연구소 한쪽 버려진 땅을 오늘날과 같은 어엿한 텃밭농장으로 변화시키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회장 최용호 선임연구원

 

회원만큼 다양해진 작물

 

 

2018년부터 정식으로 모집이 시작된 텃밭농장 동호회의 회원 수는 30명입니다. 각각 다섯 평씩의 텃밭이 제공되기 때문에 정원은 늘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요. 해마다 지원자 수가 많아져 올해는 5대 1까지 경쟁률이 치솟았다는 게 최용호 회장의 전언입니다. 화학연 텃밭농장 동호회는 매년 2월 신규회원 모집공고와 공개추첨을 진행하고 있는데요.

 

 

어느 해보다 지원자가 많았던 올해는 선발된 회원들의 면면에서도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흔히 중장년의 취미생활로 여겨지던 텃밭 가꾸기에 20~30대 젊은 회원들이 대거 유입되며 더 큰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것인데요. 화학연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는 베트남 국적의 회원들도 늘어나며 자녀나 한국을 방문한 부모와 함께 텃밭을 가꾸는 정겨운 모습이 자주 연출되고 있다고 합니다.

다양해지는 구성원만큼 텃밭에서 자라는 식물의 종류도 점점 더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상추·깻잎·감자·고구마 등의 전통적인 텃밭작물부터 김장용 배추와 무, 박하와 취나물과 아스파라거스, 심지어 오크라·열매마·차요테처럼 이름도 생소한 작물들까지 다채로움이 마치 작은 세계 식물원을 보는 듯한데요.

최용호 회장은 “비록 다섯 평 남짓의 작은 텃밭이지만 각양각색의 씨앗과 채소를 심고 가꾸며 늘 설레임과 기다림의 농심(農心), 인내와 열정의 인생을 배우게 된다”면서 내년에는 흙냄새 가득한 텃밭에서 더 많은 화학연의 동료들이 함께 생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