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ICT 케미알앤디
김태희 말고 화학연이 밭가는 나라
‘우즈벡 화학연’ 설립 순풍

중앙아시아 심장부에 있는 나라 우즈베키스탄. 여러분은 ‘우즈벡’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유튜버들 덕분에 예전보다 많이 알려졌지만, 여전히 모르는 게 더 많은 미지의 땅입니다. 동서양 실크로드의 교역로, 푸른 타일의 이슬람 건축, 꼬치구이 샤슬릭, 아니면 김태희가 밭을 가는 미녀의 나라 정도가 대부분일 텐데요. 하지만 이런 단편적인 지식에도 조만간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그 변화의 물결을 이끌고 있는 한국 대표 브랜드 중 하나가 ‘화학연’입니다.
Chapter 01
국경 넘는 K-화학
우즈벡은 한국의 성장 모델을 열심히 배우고 있는 나라들 중 하나입니다. 최근 크게 늘어난 양국 간 교역과 더불어 세계적인 K-콘텐츠 열풍으로 한국어가 영어를 위협할 만큼 인기 외국어로 부상하고 있지요. 이런 흐름은 비단 경제나 문화 분야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과학기술에서도 국경을 넘는 ‘K-R&D’의 기운이 무르익고 있는데요. 대표적인 사례가 내년 완공을 목표로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우즈벡 화학연’입니다.

'우즈벡 국가화학산업 발전을 위한 화학연구원 설립 역량강화사업' 마스터플랜 공청회에 참석한 귀빈 단체사진
우즈벡 화학연은 한국형 정부출연연구기관 모델이 해외에서 제도화되는 첫 사례입니다. 또한 우리나라와 접점이 없었던 중앙아시아 과학기술 외교의 시작점이지요. 그 시작은 지난 2017년 미르지요예프 우즈벡 대통령의 방한이었습니다. 양국 간 정상회담에서 우즈벡 정부가 자국의 화학산업 발전을 위해 한국의 화학연을 벤치마킹하고 싶다는 뜻을 우리 정부에 공식 요청한 것이지요.
이에 따라 화학연은 지난 8년간 우즈베키스탄 정부와 현지의 사업실시기관(우즈베키스탄 화학공사)를 도와 전반적인 설립 과정을 주도해 왔습니다. 이렇게 우즈벡 화학연의 성공적인 구축과 운영을 위해 기술지원부터 인력교류까지 물심양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화학연은 내년 완공을 기다리는 마음이 더 각별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것은 바로 2026년이 화학연의 창립 50주년을 맞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Chapter 02
한-우즈벡 협력의 이정표
‘우즈벡 화학연구원(UzCCT)’ 설립 사업은 양국 간 과학기술 협력 강화와 산업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전략적 프로젝트입니다. 주요 사업 내용은 △연구소 건축 및 시공 △연구장비 및 기자재 도입 △초기 인력 훈련 및 연수 △연구 및 장비 △건축설계 관련 컨설팅 △마스터플랜 수립 △공동 R&D 수행 △연구인력 학위과정 교육 및 운영 자문 등입니다. UzCCT 설립 사업의 기획, 실행, 평가까지 대형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수행을 위해 전 과정을 총괄 관리PMC(Project Management Consultant)는 한국 화학연이 주관하며 현대아산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화학연구원 예상 조감도
현재 우즈벡 타슈켄트주 울릉벡 지구에 세워지고 있는 UzCCT는 우즈벡의 국가 화학산업을 대표하는 종합 연구기관입니다. 우즈벡은 UzCCT 설립을 통해 지하자원의 고부가가치화, 자원 가공 및 생산제품 다양화, 산업 경쟁력 강화, 인력 양성 및 연구 인프라 확충 등의 효과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아시아(CIS) 지역의 화학산업 진출 허브로 도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신북방정책, 전략적 과학기술 외교, 산업협력 기반 구축 등 정부 정책과 연계한 협력 강화와 국내 출연연 모델의 해외 수출 성공 사례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국내 화학 관련 기업의 CIS 시장 진출 교두보 마련과 석유화학·가스·엔지니어링·건설 분야의 새로운 블루오션 개척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Chapter 03
낯설면서도 닮은 양국의 과학기술사
어찌 보면 우리나라와 우즈벡은 과학기술 역사에서 닮은 점이 많습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전 한반도에서 과학기술이 가장 융성했던 시기를 꼽는다면 언제일까요? 아마도 한민족 최고의 성군으로 꼽히는 조선 세종 시대를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의 재위 기간 중 쏟아진 수많은 발명품은 15세기 세계 과학사에서도 손꼽히는 업적들로 손꼽힙니다.
1983년 일본 도쿄대가 발간한 <과학기술사 사전>은 기원전부터 20세기까지 세계의 대표적인 과학기술을 50년 단위로 정리한 것입니다. 이 책에 따르면 놀랍게도 세종 재위 전후의 조선은 유럽과 아랍 세계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들을 양산하고 있었습니다. 집필진 중 한 사람인 과학사학자 이토 야마다는 해당 시기에 선정된 세계적인 과학기술 업적 62건 가운데 절반에 이르는 29건이 조선의 성과였다며 “15세기에 노벨상이 있었다면 분명 조선이 싹쓸이했을 것”이라고까지 평가하고 있지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과학기술 군주와 세기의 천재들이 일군 만백성의 태평성대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홀연히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장영실의 행방처럼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문화와 진취적인 사상은 수많은 사화와 전란, 식민지와 동족상잔의 비극을 거치며 급격히 힘을 잃어갔습니다. 수백 년이 흐른 1970년대에 이르러서야 부흥의 계기를 마련하게 됐지요. 그 중요한 발판이 된 것이 미국의 대외원조사업을 기반으로 설립된 정부출연연구기관들입니다. 화학연도 한·미기술협력사업에 따른 상업차관과 특별외화대출 등으로 필수적인 연구 장비를 확보하며 오늘날 국가 연구개발의 핵심을 이루는 화학전문 연구기관으로서의 기틀을 다졌습니다.
Chapter 04
K-R&D의 선두주자로
우즈벡 역시 천연자원이 주요 수출품인 현재의 이미지와 달리 동서양 실크로드의 교차로였던 시절, 이라크의 바그다드와 함께 유럽과 이슬람 세계의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나라였습니다. 특히 10~12세기에 큰 번영을 누린 우즈베키스탄 제3의 도시 부하라(Bukhara)는 오늘날까지 인류 모두의 자산으로 남아 있는 숱한 과학기술 업적들의 산실이지요.
부하라는 특히 부호들이 설립한 대학기관에 세계 곳곳에서 많은 학자들이 몰려들며 수학과 의학에서 큰 발전을 이뤘습니다. 사칙연산을 정립하고 대수학을 발전시켜 현대 컴퓨터의 핵심기술인 알고리즘의 어원이 된 알콰리즈미, 유럽에서도 사용되는 의학 교과서를 저술한 이븐 시나는 지금도 이곳 사람들의 큰 자랑입니다. 하지만 호라즘제국의 중심지였던 우즈베키스탄은 13세기 몽골제국의 침공으로 온 나라가 초토화되었고 찬란했던 과학기술 역시 역사의 맥이 끊기게 됐지요.
그로부터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날, 우즈벡은 다시 찬란했던 과학기술 문명의 부활을 위해 기지개를 켜고 있는 것인데요. 정부출연연구기관 모델의 역사적인 해외 진출을 통해 우즈벡의 과학기술 르네상스, 그 새로운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는 화학연이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위상을 더욱 높은 단계로 이끄는 K-R&D의 견인차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