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메뉴 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

KRICT Issue

열사의 땅이 알려준 교훈 ‘내후성’

작성자  조회수1,518 등록일2025-11-04
케미알앤디00.png [1,748.9 KB]

KRICT 케미알앤디

 

열사의 땅이 알려준 교훈

'내후성'

 

 

지금으로부터 50년 전, 화학연이 설립된 1976년은 대한민국 과학기술사와 함께 산업발전사에서도 중대한 이정표로 기록되는 해입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고유모델 승용차 ‘포니’가 처음으로 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시조새로 불리는 포니는 같은 해 국내뿐만 아니라 사상 최초로 해외시장에도 진출하며 오늘날 5,600만 대의 누적 수출량(2025년 기준)을 자랑하는 ‘K-카’ 시대의 서막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기술에 대한 지식도, 해외시장에 관한 이해도 부족했던 한국산 자동차는 낯선 땅에서 누구도 예상치 못한 기상천외의 문제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는데요. 중동의 살인적인 열기와 자외선에 비틀어지고 변색되는 플라스틱 소재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Chapter 01

열사와 동토의 땅…서로 다른 세계의 기후환경

 

포니는 1976년 남미의 에콰도르에 처음으로 6대가 수출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건설 붐을 타고 한국 기업들이 많이 나가 있던 중동의 사우디아라비아에 114대를 수출하며 세계시장 진출의 기대감을 한껏 높였습니다. 하지만 환희의 순간은 짧았습니다. ‘초심자의 행운은 반드시 가혹한 시험으로 끝을 맺는다’(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란 글처럼 과학기술과 산업의 세계에서 적당히 넘긴 과정은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는 큰 교훈을 얻게 됐지요.

미국, 일본, 독일 등의 선진국이 100년 넘게 걸려 터득한 기술과 산업을 단숨에 따라잡았다고 환호하던 한국의 제조업은 도전정신과 근면함만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단계가 있다는 것을 각성하게 됩니다. 당시 열사의 땅 중동에서 발생한 포니의 가장 큰 결함은 뜨거운 땡볕 아래 섭씨 100℃까지 치솟는 실내온도를 견디지 못하고 시트, 대시보드, 센터페시아 등의 내장재가 심하게 뒤틀리거나 색소가 날아가 버리는 현상이었습니다. 자동차의 소재와 부품이 전 세계의 서로 다른 다양한 기후 환경에서도 잘 견딜 수 있는지를 평가하는 ‘내후성’이 신생 자동차 기업으로서는 생소한 개념이었던 것이지요.

 

 

‘내후성’(weather resistance)은 자연환경에 대한 소재의 저항력을 뜻합니다. 햇빛, 비바람, 온도, 수분 등의 가혹한 환경에서 소재가 얼마나 잘 견디는지를 나타내는 특성입니다. 내후성을 점검해야 하는 소재의 범위는 매우 넓습니다. 자동차, 전자제품, 건축자재, 일상제품부터 문화재 보존까지 거의 모든 산업 영역에서 소재와 부품의 수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는데요.

 

 

 

Chapter 02

산업현장의 실무형 해답 ‘내후성 학교’

 

우리나라가 내후성 시험기술과 소재 열화에 대한 이해도를 더욱 높이게 된 또 다른 계기는 IMF 외환위기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대규모 기업 구조조정 등의 고강도 개혁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제조업 강화의 새로운 발판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늘어나는 수출과 달리 기초가 허약했던 소재와 부품 부문에서는 수입이 늘어나는 모순에 직면했습니다.

화학소재의 수명은 영구적일 수 없습니다. 시간과 환경에 따라 고유의 물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는 소재가 적용된 제품의 기능 저하, 나아가 우리 산업의 대외 신인도와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따라서 화학 소재의 생로병사에 해당하는 초기물성과 수명예측, 잠재적인 고장과 불량원인 등에 대한 신뢰성 평가가 매우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내 관련 산업계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위해 부품소재기술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2001년 화학연에 화학소재 신뢰성 평가 실시기관인 ‘신뢰성평가센터’를 설립했습니다. 미국 항공우주산업이 나사(NASA)를 중심으로 신뢰성평가기법의 글로벌 표준을 주도하고 있는 것처럼 화학 분야 국내 유일의 정부출연연구소인 화학연을 국산 부품소재 신뢰성 향상의 전진기지로 삼고자 한 것입니다.

 

 

Chapter 03

내후성, 지속가능한 미래의 기준

 

설립 이후 화학소재의 신뢰성평가와 고장분석을 위한 기반 구축, 신뢰성평가의 기준제정, 신뢰성 향상을 위한 산업체 지원 등에 주력해 온 신뢰성평가센터는 2010년대에 들어서며 내후성 시험 기술의 개발과 보급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습니다. 한국 제품의 주요 수출시장인 EU와 중국 등의 환경규제 강화로 플라스틱 소재의 내구성과 열화 문제가 한국 수출산업의 중대한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세계 각지의 기후데이터를 활용한 광열화 수명예측 프로그램, 발광플라즈마 내후성 시험법 등을 새롭게 개발하고 국내 기업들에 관련 기술을 이전하는 데 성공한 신뢰성평가센터는 2015년부터 한 발 더 나아가, 그간 축적해 온 내후성 시험 기술을 바탕으로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소재 열화 및 내구성 문제 해결을 위한 실무형 교육과정인 ‘내후성 학교’를 개최해오고 있습니다. 올 여름 11회째를 맞은 내후성학교에는 그간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 SK이노베이션 등 산업계와 연구기관 종사자 975명이 참석해 누적 참석자 1,000명 돌파를 눈앞에 두게 되었는데요.

 

화학연 신뢰성평가센터가 주최한 제11회 내후성학교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허구용 신뢰성평가센터장은 “내후성 학교는 국내 화학소재 산업 경쟁력 강화의 핵심 교육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며 “국내 유일의 내후성 전문 교육 프로그램으로서 산업현장 중심의 실무형 교육을 통해 국내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더욱 안정적이고 경쟁력 있는 제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광조사 시험중인 화학연 신뢰성평가센터 연구팀

 

 

 

이와 함께 허 센터장은 최근 제품의 복합적인 성능에 대한 요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는 산업 트렌드에 발맞춰 평가 기술을 더욱 고도화하고 있는 신뢰성평가센터 연구진들의 근황에 대해서도 전했습니다. 또한 새로운 시험 분야로의 확장과 더불어 국제 표준화 기구와 연계한 글로벌 연구 협력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1976년 첫 국산 승용차 포니의 시행착오를 통해 얻은 ‘내후성’의 교훈은 반세기가 흐른 2025년, 이제 세계를 넘나드는 한국 제조업의 품격과 지속가능성을 상징하는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산업계 애로사항 해결과 실질적인 문제 해결능력의 향상을 지원하며 국내 제조업 전반의 경쟁력 향상에 힘써 온 화학연과 신뢰성평가센터의 노력이 대한민국의 다음 50년을 여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