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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Issue

승리의 브이(V) ‘백신’을 기다리며

작성자전체관리자  조회수1,482 등록일2021-02-23
우두를_접종하는_제너.jpg [84.5 KB]

KRICT Focus

승리의 브이(V)

‘백신’을 기다리며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가 장기화되고 있습니다.

전에 경험하지 못한 불안과 공포, 사회적 단절과 경제적 혼란 속에

지구촌은 다시 한 번 인류를 구할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한마음으로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백신’입니다.

백신

인두법에서 종두법으로

(좌) 에드워드 제너 (우) 에드워드 제너의 우두의 원인과 작용에 관한 연구 논문

(좌) 에드워드 제너 (우) 에드워드 제너의 우두의 원인과 작용에 관한 연구 논문

천연두는 고대 이집트 미라에서도 흔적이 발견될 만큼 오랜 시간 인류와 함께해왔습니다. 30% 이상의 치사율에 살아남아도 열에 셋은 얼굴이 마마 자국으로 뒤덮이는 무서운 질병이었지요. 역사가 긴 만큼 민간에서도 천연두에 대해 꽤 많은 암묵지들을 터득하고 있었는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한 번 앓은 사람에게 재발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15세기 무렵부터 중국과 이슬람 세계에서는 환자의 옷을 덮거나 오랜 시간 건조한 분비물을 피부 밑에 넣어 가볍게 천연두를 앓고 넘기려는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인두법’입니다.

인두법은 18세기 영국으로도 전파되었는데요. 첫 접종대상은 7명의 사형수였습니다. 다행히 이들은 모두 무사히 회복되었고 인체실험의 대가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이후 인두법은 왕실을 시작으로 영국 전역으로 확대돼 많은 생명을 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인두법은 천연두 분비물의 독성을 알맞게 조절하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예방을 하려다 오히려 중증의 천연두를 앓게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했지요. 영국 의사 에드워드 제너도 이런 부작용의 희생자가 될 뻔했습니다. 어린 시절 인두법 접종을 받고 죽다 살아난 기억은 평생 그를 쫓아다녔는데요. 그의 공포 경험은 역설적으로 인류에게 큰 선물이 됩니다.

인두법 접종에 늘 회의적이었던 제너는 어느 날 병원 근처 농장의 목동들에게서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소들도 천연두와 비슷하지만 증상은 약한 ‘우두(牛痘)’를 앓습니다. 그런데 젖을 짜다 우두에 감염된 사람들이 천연두에 걸리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제너는 우두에 걸렸던 사람들이 인두법 접종에서 아무런 염증 반응도 나타나지 않는 것을 확인하였고, 1796년 한 노동자의 아이에게 처음으로 우두를 접종하는 데 성공합니다. 그의 연구결과는 곧 영국 사회의 격렬한 찬반논쟁을 불러일으켰는데요. 제너는 자신의 아들과 수십 명의 자원자들에게 우두 접종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예방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논란을 불식시킵니다.

백신 연구의 선구자들

(좌) 루이 파스퇴르 (우)실험중인 파스퇴르

(좌) 루이 파스퇴르 (우)실험중인 파스퇴르

제너의 종두법은 영국을 넘어 곧 유럽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백신이 나오기까지는 100년이 더 걸렸습니다. 주인공은 프랑스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 제너가 이론적 바탕 없이 뛰어난 관찰력과 경험만으로 백신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면, 미생물의 존재를 최초로 발견해 ‘미생물학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 파스퇴르는 세균과 바이러스 등의 병원성 미생물과 전염병의 인과관계를 기반으로 체계적인 백신 개발의 시대를 열게 됩니다. 파스퇴르는 자신이 만든 닭콜레라·탄저병·광견병 등의 예방접종약에 라틴어 ‘암소’(vacca)를 이용해 백신(vaccine)이라는 이름도 붙였는데요. 그의 연구에 큰 영감을 준 에드워드 제너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제너가 최초로 시도한 생백신은 파스퇴르와 테오발드 스미스, 존 스노우, 빌헬름 콜, 발레마르 하프킨, 에밀 폰 베링 같은 백신 연구의 선구자들을 통해 병원균을 약하게 만드는 약독화 생백신, 죽은 균으로 만드는 사백신, 면역력이 생긴 완치자의 혈청을 이용하는 항독소백신 등으로 발전합니다. 여기에 매치니코프와 에를리히를 통해 우리 몸의 면역반응과 백신의 작용원리에 대한 이해가 더욱 깊어지며 인류가 예방할 수 있는 감염병은 장티푸스, 콜레라, 페스트, 디프테리아, 파상풍, 소아마비, 홍역, 풍진, 볼거리, 간염, 신종인플루엔자 등으로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도시화와 인구 이동 속에 감염병 역시 빠르게 늘어났습니다. 지난 50년 간 줄잡아 300종 이상의 감염병이 예전에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곳에서 새롭게 출현하거나 재출현하고 있는데요. 또 다른 문제는 선진국에서 발생하는 감염병과 달리 낙후된 지역에서 발생하는 말라리아 같은 감염병들은 백신 개발 순위에서 늘 뒤로 밀려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돈’입니다. 백신 개발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다국적 제약사들이 큰 수익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지요.

백신과 인류 진화

우두를 접종하는 제너

우두를 접종하는 제너

백신은 건강한 사람을 대상으로 접종하는 만큼 부작용을 찾아내고 안전성을 확인하는 작업이 중요합니다. 그만큼 치료제보다 개발 난이도가 높아 상용화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쉽게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바이러스의 경우 무서운 확산 속도만큼이나 백신 개발도 전례 없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이르면 내년부터도 백신 접종이 가능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는데요. WHO(국제보건기구)에 따르면 7월 현재 전 세계 200여 종의 코로나19 백신 후보물질 중 임상시험에 들어간 백신은 18개, 임상 전 개발 단계의 백신은 129개에 이릅니다.

가장 먼저 테이프를 끊은 것은 제너의 종두법이 탄생한 백신 종주국 영국입니다. 영국에서는 현재 8천여 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임상 3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 뒤를 바싹 추격하고 있는 미국과 중국, 프랑스, 독일 등도 곧 대규모 임상 시험에 들어갈 것이라 전해지고 있는데요. 이제 어느 나라가 가장 먼저 백신을 공급받을지에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세계 각국의 백신 전쟁에 대한 우려도 함께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마스크와 의약품, 진단키트 등을 둘러싸고 벌어진 국제사회의 갈등이 다시 재연되리라는 것인데요.

코로나19의 퇴치를 위해선 백신 공급과 관련한 국제적 시스템이 절실합니다. 하지만 구심점이 되어야 할 WHO의 리더십은 최근 미국의 탈퇴서 제출로 더욱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에 따라 백신 개발에서 앞서가고 있는 국가들이 자국민만 먼저 챙기는 국가 이기주의가 판을 치게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인류는 바이러스로 큰 고통에 시달려 왔지만 이 보이지 않는 적들과 투쟁하는 가운데 늘 새로운 진화의 계기를 마련하곤 했습니다. 백신이 대표적이지요. 이 소중한 인류의 유산이 과학기술의 진보를 넘어 범세계적 협력과 공존의 상징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