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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Special

지친 한국 일으킨 화학연 發 겹경사

작성자전체관리자  조회수20,465 등록일2021-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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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RICT 나르샤

* 나르샤는 ‘날아오르다’라는 뜻의 순우리말입니다.

 

지친 한국 일으킨 화학연 發 겹경사

 

 

 

끝끝내 겨울을 이기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봄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희망은
어김없이 싹을 틔우고 있습니다. 2021년 한국 과학계는 새해 벽두부터 이어진 놀라운 소식에
여전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과학자 모두가 평생 단 한 번이라도 논문이 실리기를
꿈꾼다는 과학저널 <네이처>의 표지를 두 달 연속 우리 과학자들이 장식한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연구 성과들이 모두 한 곳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입니다. 시간이 멈춘 듯 모두가 실의에
빠져 있는 것만 같았던 지난겨울, 한국화학연구원에서는 무슨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요?

 

 

네이처,
첨단과학의 이정표

빛의 속도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 첨단과학의 현주소는 과연 어디일까요?
이런 질문에 가장 적절한 답은 아마도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저널 네이처를 읽어보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현대과학의 등대

‘법관은 판결로, 사업가는 숫자로 말한다’라는 말처럼 실험과 연구가 본분인 과학자들은 논문으로 세상과 대화합니다. 오랜 실험과 연구의 정점인 논문을 통해 다른 과학자들과 소통하고 자신의 결과물에 오류가 없는지 검증을 받지요. 학술지는 이렇게 과학자가 심혈을 기울여 탄생시킨 논문을 실험실 밖 세상에 선보이는 통로입니다.


과학자들이 논문을 발표하는 학술지는 전 세계적으로 수천 종이 넘습니다. 그 가운데 유독 네이처가 더 독보적인 권위와 명성을 자랑하는 것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과학저널이란 역사성 때문만은 아닙니다. 1869년 근대 과학혁명의 중심지 영국에서 창간된 이후 150년 넘게 다져온 까다로운 논문 심사 과정에 대한 국제적 신뢰가 바탕에 깔려 있지요.

네이처 편집자의 책상은 세계 각지의 내로라하는 최신 연구결과들이 가장 먼저 도착하는 자리입니다. 매주 200여편에 이르는 게재 신청 논문들은 내부 편집자들과 해당 분야 최고 석학들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을 통해 일일이 꼼꼼하게 검증된 뒤 등재 여부가 결정되는데요. 약 10대 1의 경쟁을 뚫고 최종 선정된 뒤에도 실제 논문이 실리기까지는 한두 달이 더 걸릴 수 있다는 게 논문이 실려 본 경험자들의 전언입니다. 특히 표지논문처럼 중요한 사안의 경우 직접 검증팀을 보내 실험과정이 믿을 만했는지, 실험윤리는 제대로 지켜졌는지 철저한 현장 조사가 뒤따르는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의 워너비

네이처의 엄격한 전통은 과학사에 길이 남을 논문들을 탄생시키며 현대 과학이 나아갈 바를 제시하는 등대가 되어 왔습니다. 전 세계를 소용돌이에 몰아넣은 다윈의 진화론부터 생명공학의 출발점이 된 왓슨과 크릭의 DNA 이중나선 구조, 단백질의 분자구조, 스티븐 호킹의 블랙홀 이론, 체세포 복제양 돌리, 인간 게놈 프로젝트, 알파고 등이 모두 네이처를 통해 세상에 첫 선을 보였습니다. 전 세계 발행부수가 5~6만 부에 불과한데도 CNN이나 뉴욕타임스도 감히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게 이 때문입니다.

네이처는 1990년대부터 다양한 분야로 세분화된 자매지들을 창간하며 본격적인 과학저널 전성시대를 열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과 범위가 폭발적으로 확대되며 매주 17편 정도의 논문만 싣고 있는 네이처로는 감당할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현재 네이처의 편집방향을 따르고 있는 자매지들은 약 50여 종에 달하며 이 숫자 역시 계속 늘어나고 있는데요. 자매지들이 해당 분야에서 차지하는 위상 역시 매우 높습니다. 게재도 어려울 뿐더러 논문 수준의 참고자료로 쓰이는 피인용지수(Impact factor)가 네이처보다 오히려 높은 자매지도 점점 많아지고 있지요. 하지만 네이처 본지가 가진 위상은 쉽게 넘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특히나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에 걸쳐 과학이 큰영향을 미치는 현대 사회에서 당대 과학계 최고의 연구 성과를 상징하는 네이처 표지논문의 영향력은 더욱 높을 수 밖에 없습니다. 네이처의 표지를 장식한 논문들은 전 세계 과학 교과서와 대학전공서적에 수록되며 수많은 연구자들에게 새로운 연구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하는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합니다. 표지논문을 쓴 연구자에게는 당연히 큰 영예와 함께 최소 10년 이상의 안정적인 연구 환경이 보장된다고 할 만큼 유무형의 특전들도 뒤따릅니다. 젊은 과학자들의 소망이 네이처에 논문을 싣는 것, 성공한 과학자들의 목표가 네이처 표지에 실릴 만한 업적을 이뤄내는 것이란 세계 과학계의 속설도 무리가 아니지요.

 

“머선 일이고?” 이례적인 겹경사

처의 표지를 보라색으로 물들이며 세계 과학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화제의 키워드는 ‘광사태(Photon Avalanche)’였습니다. 한국화학연구원과 미국·폴란드 공동연구진이 나노입자에서 세계 최초로 발견한 광사태는 특정한 구조의 나노 입자에 작은 빛 에너지를 쏘여주면 물질 내의 광학 반응이 마치 눈사태처럼 연쇄적으로 증폭되는 현상입니다. 이 광사태 현상은 바이오의료기기부터 태양전지, 자율주행자동차, 인공위성까지 빛을 이용하는 모든 산업과 기술의 혁신에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 네이처 편집진의 높은 평가를 받으며 표지논문에 선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놀라움의 끝은 여기가 아니었습니다.

네이처 표지논문의 공동교신저자인 서영덕 박사는 언론 브리핑 자리에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화학연 페로브스 카이트 태양전지 연구팀과의 적극적인 협력 계획을 밝혔는데요. 공교롭게도 그로부터 한 달 후인 2월말, 이번에는 예의 그 화학연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팀이 서 박사팀의 뒤를 이어 다시 한 번 네이처의 표지를 장식합니다. 차세대 태양전지로 주목받고 있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효율을 세계 최고 수준의 기록인 25.2%까지 끌어올린 것입니다. 이전에도 아시안 게놈, 시간 결정 실험, 반도체 소재의 미세균열, 단분자 트랜지스터 등 한국인 과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몇 해 간격으로 네이처 표지논문에 선정돼 화제가 되곤 했습니다. 하지만 까다롭고 엄격하기로 유명한 네이처가 두달 연속으로, 그것도 한국화학연구원이란 동일 기관의 한국인 연구자들에게 얼굴을 허락한 것은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야말로 ‘한국의 빛’이 2021년 세계 과학계의 새벽을 여는 서광이 된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