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핀이 만년 유망주 꼬리표를 뗄 수 있을까. 국내 연구진이 그래핀 상용화를 앞당길 수 있는 제조공정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양초의 주성분인 파라핀을 이용해 그래핀 전사과정에서 생기는 주름과 불순물을 없애는 신기술을 개발한 것이다.
○ 한국화학연구원 탄소산업선도연구단 홍진용 박사는 MIT(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 징콩 교수팀과 공동으로 그래핀을 원하는 기판으로 옮기는 과정(전사 과정)에서 생기는 주름이나 기포, 불순물을 없앨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 그래핀*은 우수한 물리적?화학적 특성으로 인해 투명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와 태양전지, 연료전지 등 활용분야가 무궁무진해 ‘꿈의 신소재’로 불렸다. 그동안 대량생산과 고품질화를 위한 후속 연구가 이어졌지만 아직 상용화 문턱을 넘진 못했다.
*그래핀 : 흑연의 한 층으로 이뤄진 얇은 막이다. 2004년 영국의 가임과 노보셀로프 연구팀이 상온에서 투명테이브를 이용해 흑연에서 그래핀을 분리하는 데 성공했다. 실리콘보다 전자이동도가 100배 빠르고, 강철보다 강도가 200배 강하며, 다이아몬드보다 열전도성이 2배 높아 미래 신소재로 주목받았다. 초기 특성연구를 지나, 최근에는 상용화를 위한 대량생산과 고품질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 그래핀은 화학기상증착법(CVD?Chemical Vapor Deposition)을 이용해 제조된다. 화학기상증착은 금속촉매 위에 그래핀을 성장시키는 것으로, 1000℃이상의 고온에서 탄소원자를 잘 흡착하는 금속촉매 표면에 탄소를 증착시켜 그래핀을 키운다.
○ 금속촉매 표면에 합성된 그래핀을 원하는 기판에 옮기는 과정이 전사(Transfer)다. 대부분 그래핀 표면에 고분자 필름을 코팅해 지지층을 생성한 후 원하는 기판에 이동시키고, 최종적으로 고분자 필름과 금속촉매를 제거한다.
○ 하지만 일반적인 고분자 필름을 이용한 전사의 경우, 그래핀 성장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주름을 없앨 수 없으며, 전사 후 고분자 필름 잔여물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려운 탓에 그래핀 품질을 떨어트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 이번에 개발된 그래핀 전사기술의 핵심은 파라핀*이다. 연구진은 양초의 주성분인 파라핀을 ‘금속촉매-그래핀-고분자필름’층에서 고분자필름 대신 사용해 그래핀 품질저하 문제를 해결했다.
*파라핀 : 양초의 주성분으로 알케인 탄화수소를 두루 일컫는다. 파라핀은 탄소분자로 이뤄진 탄화수소분자 혼합물로 석유나 석탄, 오일셰일에서 도출된 고체이다. 물에 녹지 않으나 에테르나 벤젠, 에스터에는 녹는다.
○ 연구진은 파라핀이 온도변화에 따라 고체와 액체로 가역적으로 변하는 현상을 그래핀 전사에 이용했다. 먼저 ‘그래핀-파라핀(고체상태)’으로 이뤄진 층의 파라핀에 열을 가했다. 그러자 파라핀이 액체상태로 변화하면서 열팽창이 일어나 그래핀의 주름이 펴졌다.
○ 다음으로 액체상태의 파라핀을 차갑게 식혀 다시 고체로 변한 ‘그래핀-파라핀(고체상태)’ 층을 기판으로 옮긴 후, 용매를 이용해 그래핀 표면에서 파라핀을 완전히 제거했다. 파라핀과 그래핀의 반응성이 낮아 그래핀 표면에 잔여물이 남지 않은 것이다.
○ 실제로 원자력간현미경(AFM)으로 고분자필름과 파라핀을 이용해 전사한 그래핀의 표면을 비교해보니, 고분자필름 전사 그래핀에는 나뭇잎의 잎맥처럼 보이는 주름과 입자형태의 잔여물이 있었으나, 파라핀 전사 그래핀은 주름이나 잔여물 없이 깨끗했다.
○ 그 결과, 기존 고분자를 이용해 전사된 그래핀과 비교해 저항균일도 5.6배, 전자이동도 4.5배나 증가하는 등 전기적 특성이 크게 향상됐다. 이에 따라 그래핀 상용화의 걸림돌이었던 전자소자의 안정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홍진용 박사는 “그동안 그래핀 상용화를 가로막았던 전사과정에서의 구조적 안정성과 그래핀 고유 특성 유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했다”면서 “다양한 그래핀 응용 제품을 상용화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자평했다.
○ 이번 연구결과는 세계 최고 권위지인 네이처의 자매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2월호에 ‘Paraffin-enabled graphene transfer(파라핀을 이용한 그래핀 전사)’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게재됐다.
○ 또한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가과학기술연구회에서 지원하는 신진연구자 지원사업 및 한국화학연구원 주요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됐다.